함께 잘해보자는 말이 왜 부담이 될까

일하는 방법을 논의할 수 있는 환경에 있다면..

‘나는 호의를 가지고 잘해보자고 제안한 건데, 왜 싫어할까?’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가끔 이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같은 직군 간에도 그런 일이 생길 수 있겠지만, 나는 그런 경험은 별로 없었다.

보통 개발자들은 도와주면 고마워하고 좋아한다.

가끔 자기 코드에 자부심이 강한 분들이 의견을 주는 경우도 있지만, 내가 누군가의 일을 도와주는 상황은 대체로 일이 많을 때라 “고맙다”는 말을 듣는 일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직군과는 조금 다른 반응을 접할 때가 있어 궁금해졌다.


개발자는 필연적으로 사용자를 생각한다

내가 겪는 상황은 이렇다.

계획을 세우고, UI/UX를 설계하는 과정에서 실제 구현을 담당하는 개발자를 배제한 채 일방적으로 진행되는 경우.

물론, 기획과 디자인에서 방향을 정해주고 개발은 이를 그대로 구현하는 게 중요한 경우도 있다. 그런 상황도 필요할 때가 있다.

하지만 나는 그런 방식은 매우 제한적이고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선택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개발자도 사용자에 관심이 많다.

개발자는 화면에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그 이면의 흐름, 사용자 경험 전반에 대해 고민한다.

적어도 다른 직군 못지않게, 아니 때로는 가장 많은 영역을 생각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

단순히 텍스트 하나를 화면에 보여주는 일이라도 고려할 요소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냥 여기 있는 걸 저기에 옮겨주세요”라는 요청 자체를 비난하고 싶은 게 아니다.

그저 “왜 그렇게 해야 하는가”라는 이유가 필요할 뿐이다.

그건 하기 싫어서 묻는 게 아니다. 오히려 더 잘하고 싶기 때문에 묻는 것이다.

만약 그 ‘왜’를 설명하지 못하거나 설명할 생각조차 없다면, 그 일은 금방 지치게 된다.

왜냐하면 가장 중요한 부분 — 문제의 맥락 — 을 알지 못하면 더 나은 해결책을 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늘 아이디어가 나오는 시점부터 함께 논의하는 것이 가장 좋다고 생각한다.

그 과정에서 더 빠르고 효과적인 대안이 나올 수도 있으니까.


동료이고 싶지, 리소스이고 싶진 않다

함께 일하는 사람을 동료라고 생각하는가? 아니면 일을 처리하기 위한 도구나 리소스라고 생각하는가?

전자라면 당연한 일이고, 후자라면… 외주처럼 생각하는 건 아닐까 싶다. 그리고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 태도가 금세 드러난다.

예를 들어 “그냥 시키는 대로 하지, 왜 제안을 하지?”라는 식의 반응 말이다.

개발자는 코드만 치는 사람이 아니다. 함께 고민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동료다.

물론, 예외는 있다.

그저 일로만 받아들이고 깊게 고민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런 사람이 주변에 많다면… 그 또한 유감스러운 일이다.


함께 만들고 싶어요

이건 내가 실제로 했던 말이다.

“함께 잘 만들어보고 싶어요.”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뜻밖이었다. “왜 내 역할을 침범하냐”는 이야기였다.

깜짝 놀랐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렇다면, 당신이 하고 싶은 역할이 무엇인지 알려주세요.

나는 거기에 맞춰서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사용자에게 좋은 제품을 만들기 위해, 당신이 원하는 역할과 책임이 있다면 명확히 알려주세요.”

하지만 안타깝게도, R&R을 이야기하는 사람일수록 정작 본인의 역할을 명확히 정의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이런 경우에는 ‘프로세스’ 이야기가 꼭 따라붙는다. 프로세스가 없으니 먼저 프로세스를 정하자는 식이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그럼 어떻게 하면 일이 잘 돌아갈 수 있을까요?”라고 물어도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곤 한다.

안타깝다.

물론 나에게도 문제가 있었을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오히려 합이 잘 맞는 사람들이 노골적으로 문제를 지적해주는 게 더 좋다.

그래야 다음엔 더 잘할 수 있으니까.

회사는 작은 사회고, 그 안에서 나는 내가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한다.

그건 생각보다 쉽지 않다.

Subscribe to Half-Built Life

Don’t miss out on the latest issues. Sign up now to get access to the library of members-only issues.
jamie@example.com
Subscribe